아편전쟁 중국 몰락의 시작

1839년부터 1949년까지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까지 100년동안 서양과 일본제국주의에 침탈과 치욕을 겪었던 중국 청나라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국과 청나라의 무역

1780년대 당시 영국에서는 상류층들이 차를 즐겨 먹는것이 유행이었는데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티문화로 영국은 중국에서 천문학적으로 많은 차를 수입하게 되었습니다. 차와 함께 도자기도 수입했는데요. 이 때 중국의 도자기 솜씨는 매우 뛰어났으며 이때 도자기가 중국을 뜻하는 China가 되었습니다.

영국은 모직물, 은과 고급 시계를 중국에 수출하였으나 워낙 고급 물건에 소량을 수출하다보니 이득이 없었습니다. 광저우 단 한곳에 항구를 개방하여 무역을 했으나 아열대 지방으로 매우 더웠던 광저우는 영국의 주요 수출품인 모직물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영국의 고급진 물품을 사기에 청나라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밀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편은 강한 중독을 일으키는 약으로 현대의 병원에서 중환자의 진통제로 쓰는 모르핀이 아편을 이용한 것입니다. 양귀비과의 2년생 초인 양귀비의 유액을 굳힌 것으로 한 번만 맡아도 바로 중독 될 정도록 강력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된 육체 노동으로 고생하던 중국인들은 퇴근 후 피우는 아편에  빠져 들었습니다. 광저우는 아편에 빠진 사람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아편굴이라는 비밀장소에서 아편을 피우며 일상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죠. 중국은 영국에 차를 팔고 은을 얻어 그 은으로 다시 아편을 사는 진풍경을 연출했답니다. 그로 인해 영국은 무역 적자를 해결하게 되었죠. 아편에 중독된 청나라인들은 백성의 1/4이었다고 합니다.

중국은 아편에 중독되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경제, 국가시스템이 망가져 갔습니다. 결국 1799년에 아편 무역 금지령을 내리게 됐는데 관리들은 뇌물을 받고 밀수를 눈감아 주었고 아편은 여전히 밀수가 되었습니다. 군병들 사이에서도 아편이 돌게 되었고 전투 능력이 상실되고 기강이 해이해졌습니다. 관리의 30%가 아편을 할 정도였습니다.

아편전쟁

1839년 청나라는 임칙서를 흠차대신으로 임명하였고 임칙서는 서양 무역상들을 협박하여 아편을 팔지 않도록 각서를 쓰게했습니다. 그 때 몰수된 아편이 2만 상자가 넘었습니다. 임칙서는 23일에 걸쳐 석회와 소금을 섞어 분해한 후 바닷물로 중화시킨 뒤 흘려 보냈고 무역상들은 눈물을 흘리며 영국에 고자질하였습니다.

영국은 분노했고 전쟁파와 전쟁 반대파의 대립에 놓이게 되는데 투표에 의해 271:262 의 결과로 전쟁파가 이기게 됩니다. 영국은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것이 1840년 아편전쟁입니다.

난징조약

영국과 청나라는 아편전쟁을 하게 되었고 청나라의 기술과 무기는 영국과 비교가 안됐습니다. 25만이 넘는 청나라군은 2만에 불과한 영국군에게 처참하게 패하며 항복을 하게 되었죠. 전쟁이 아닌 학살 수준이었습니다. 영국은 청나라와 난징조약을 맺게 됩니다.

광저우 외에 4곳에 항구(샤먼, 푸저우, 닝보, 상하이)를 개방하고 홍콩을 정식으로 삼켰으며 세금도 영국에 유리하게 설정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참패한 청나라는 이 조약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껏 중국을 이기고 무역 독점권을 가져갔지만 영국은 10년 동안 큰 득을 못보게 되죠. 청나라 백성들은 질적으로 좋지도 않은 수입산을 살 필요가 없었고 아편 또한 영국에서 사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산하였습니다. 당연히 영국은 무역적자가 나게 되고 화가 나게 됩니다. 중국에 물건을 팔 수 있는 지역을 넓혀달라 했지만 중국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계속 화가 나게 됩니다.

애로호 사건

그 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애로호라는 해적선이 나타나게 됩니다. 선장은 영국인이나 선박은 청나라 소유이면서 승조원들 모두 청나라인이었습니다. 청나라 관원은 당연히 해적선인 애로호의 선원을 체포하였습니다. 영국은 애로호에서 영국 국기를 청나라 관원이 바다에 던져 버렸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킵니다.

청나라는 영국 국기는 걸려 있지도 않았고 배는 청나라 소유인데 무슨 소리냐 항의했지만 영국은 대영 제국의 국기를 모욕한 것은 참을 수  없다며 전쟁을 일으키게 되죠.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하찮은 이유를 구실로 전쟁을 선포하게 됩니다.

2차 아편전쟁

제 2차 아편전쟁입니다. 무역 적자로 영국은 전쟁 구실만 찾고 있었고 이 전쟁은 어차피 날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하필 또 프랑스에서는 자국의 선교사가 중국에서 처형되었다는 구실로 영국과 손잡고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미국과 러시아도 영프 연합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청나라는 완전 개박살이 나게 됩니다. 청나라 황제 함풍제는 도망을 갔고 연합군은 베이징을 함락시키며 동양 최고의 정원인 원명원까지 영국에 의해 약탈, 붕괴가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건륭제가 유럽과 중국의 미학을 집대성하여 이룩해 놓은 것이 영프 연합군에 의해 폐허가 된 것입니다.

베이징조약

청나라는 또한번 항복하며 베이징조약을 체결합니다. 더 많은 항구가 개항되었고 아편 무역이 합법화 되었으며 막대한 배상금을 영국(은 400만 달러)과 프랑스(은 200만 달러)에 지불했습니다. 옆에서 이 모든 사건을 지켜 보던 조선은 서양 세력에 두려움을 느껴 외교에 문을 걸어 잠그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굴욕을 본 청나라는 정신을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을 배우자는 양무운동(근대화운동)을 시작하지만 아편전쟁으로 동양 최강자였던 청나라는 결국 망가져 그 후 100년 동안 서구 열강과 일제에 의해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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